회원가입 취업 알바 부동산 자동차 줄광고 업체정보 학원정보 병원정보 쇼핑 직거래장터 견적서
사이트 맛집 문화 관광 축제행사 숙박 이벤트 토크링 플레이링 비즈니스키워드
|   문화재|   산|   공원|   유적지|   하천|   건축물|   박물관
인기키워드   독서실   이제마   인화영   도미노   순대  
문화재
공원
유적지
하천
건축물
박물관
관광안내 계룡안내 홈 > 관광안내
계룡산 추천 1
주소 충남 계룡시  
전화번호 --
등록된 홈페이지가 없습니다.

Follow chalsweb on Twitter Follow chalsweb on Twitter


전체 소개 이용정보 추가정보 추가설명 찾아오시는길  
소개

계룡산은 멀리서 보면 평범한 여느 산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그곳에 가서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운 골짜기와 바위와 나무를 둘러 보게 되면 그 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산봉우리가 줄지어 날카롭게 솟아 있고, 깍아지는 듯한 낭떠러지와 울창하게 들어선 나무들이, 곳곳의 깊디깊은 골짜기와 그 골짜기에서 흐르는 쪽빛 내와 한데 어울려, 뛰어난 경치를 이루어 놓았다.

소롯길에 들어서면 온통 나무밖에 보이지 않으나 길이 꺾일 적마다 맑은 내와 만나고 산등성이에 오르면 잇대어 선 봉우리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계룡산의 최고봉은 845.1m로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의 모습이 수려하고 수석이 푸짐하여 이미 삼국시대부터 백제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알려졌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전국의 5대 명산중의 하나인 서악(西岳 또는 中岳이라고도 하였음)으로 지칭되었다.

풍수가들은 이 산의 지리를 회룡고조(回龍顧祖 : 산의 지맥이 삥 돌아선 본 산과 맞서는 형국)의 형세, 혹은 산태극 수태극의 형세로 보아 매우 진기하게 여겼다. 이처럼 산세가 특이해서인지 계룡산에는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계룡산의 동·서·남·북에는 4대 사찰이 있었는데, 동쪽의 동학사와 서쪽의 갑사, 남쪽의 신원사는 현재까지도 보존되어 전해지고 있으나 북쪽의 구룡사는 현재 절터만 남아있어 그 흔적만을 엿볼 수 있다.

신도안 부근의 계곡에는 암용추와 숫용추가 있는데 계곡의 물이 흐르다가 고인 10평 남짓의 작은 못(沼)이 암용추이고, 서남쪽의 골짜기를 흐르던 옥같은 맑은 물이 스무자 정도되는 절벽의 폭포 밑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물이 괸 곳이 숫용추이다. 이 두 용추에는 옛날 신선한 두 마리의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이 두 곳의 수석은 그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룬다. 계룡산은 이처럼 산의 생김새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많은 계곡마다 소와 폭포를 안고 있고 산에 있는 수목의 54% 이상이 침엽수여서 늘 푸르른 인상을 준다.

이중환은「택리지」에서 이 나라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난 산으로 넷을 꼽았는데, 그것들이 곧 오대산과 삼각산, 구월산과 계룡산이었다.

그는 계룡산이 웅장함이나 수려함에서 다른 산에 좀 못할지 모르나 그 깊숙한 골짜기와 넓고 깊은 못은 다른 산에 없는 것들이라고 했으며 또 갑사와 동학사 같은 오래된 절과 기이한 명승지가 많다고 했다.

이 산에는 큰 골짜기가 일곱개가 있으며 거기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그 언저리에 있는 광야의 젖줄이 된다. 이 물줄기를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보면 첫째가 산의 남쪽인 신도안 지역으로 흘러 대전천과 유성천에 와닿는 갑천을 중심으로 한 내들이고, 둘째가 산의 북쪽 골짜기에서 흐르는 노천을 중심으로 한 내들이다. 이 내들은 논산시 상월면과 노성면을 지나 채운면에서 금강에 흘러들 듯이 충청남도의 들을 적시며 금강으로 흘러든다. 길짐승과 날짐승과 곤충이 350종류나 살고 있으며 개비자나무, 향나무, 전나무, 측백나무, 산목련, 가래나무, 굴피나무 같은 식물이 자그마치 6백종류가 더 되는 동·식물의 중요한 분포지역이다. 봄이나 여름에는 갖가지 꽃이 피고 가을이면 맛좋은 으름, 다래 그리고 보리똥 열매 같은 것이 많이 열린다. 이 뿐만 아니라 유서깊은 절과 전설이 담긴 유적들도 많다. 이를 테면 앞에서 동쪽의 동학사와 서북쪽의 갑사 말고도 서남쪽에 신원사가, 동남쪽에 쇠로 된 당간과 당간 지주와 같은 보물 넉 점과 신원사 오층석탑, 중악단, 영규대사 무덤 같은 것들이 있다. 또 의상대사 토굴, 영규대사 토굴, 조중봉 토굴, 나한 토굴 같은 토굴과 경관이 훌륭한 은선폭포, 용문폭포, 숫용추, 암용추 같은 폭포와 못이 널려있다. 이곳의 이런 경관이 주는 신비로운 힘이, 심신이 고달파 신의 힘에 기대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사람이 자연의 신비스러움에 외경심을 갖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런 곳에다 제단이나 신단을 갖추고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올림으로써 사람은 그런 외경심을 표현하고자 그 자연의 신비한 힘으로 현세의 어려움이 풀리기를 바란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라에서 이곳에 중악단을 세워 제사를 올린 것과 여느 사람과 푸닥거리를 하고 치성을 드리는 것과는 그 근본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1976년에 일어나 종교 정화운동으로 명승지에 있는 무허가 암자나 기도원 같은 것이 철거되기 전까지만 해도 경관이 신묘한 곳마다 교당과 암자와 수도원과 기도원이 수없이 들어섰고 골짜기마다 단골(충청남도에서는 무당이 단골이라 불린다)의 주문소리와 요령소리와 징소리가 울려퍼졌으며 못 근처나 큰 바위 둘레가 촛농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다. 1968년 12월 31일 이후 정부는 61만km의 계룡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자연보호 및 관광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아무튼 이 산은 경관이 빼어나고 유적지가 많아 1968년 12월 31일에 경주 한려수도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곳곳에 능선이며 산봉우리들이 가파르게 솟아 있어서 등산하기에도 썩 좋다. 잘 알려진 등산길은 일곱여덟 가지가 있는데 흔히 교통이 편리하고 밥 집이나 여관이 많은 동학사 쪽에서 출발한다. 이것을 크게 네가지로 나누면, 첫째가 동학사에서 출발하여 다시 동학사로 들어오는 것이며, 둘째가 동학사에서 출발하여 갑사로 돌아오는 것이며, 셋째가 동학사에서 출발해서 신원사로 가는 것이며, 넷째가 동학사에서 출발해서 신도안으로 가는 것이다. 하기야 체력이나 시간에 따라 길게도 짧게도 잡을 수가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동학사에서 오뉘탑, 신흥암, 용문폭포를 거치거나, 은선폭포, 관음봉, 연천봉을 거쳐 갑사로 가는 방법으로 더러 상봉, 삼불봉, 천진보탑에 들르기도 한다.

능선을 타고 굽이를 볼 때마다 계룡산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고, 취향에 따라서는 절벽을 타내리며 갈 수가 있어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시월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오나 어느 계절이고 그 계절의 독특한 정취를 맛볼 수 있다. 특히 겨울철의 눈덮인 계룡산은 좀 험상궂기는 하나 은선폭포의 물줄기가 얼면서 내려 된 얼음폭포 같은 아름답고 독특한 경치가 펼쳐지므로, 빈 산의 적막함을 두려워 말고 한번쯤 떨치고 가볼 만하다.

이곳에서 맑은 내를 끼고 5리쯤 오르다 보면 비구니들의 불교 전문 강원이기도 한 동학사의 들목에 홍살문이 보이고 그 오른켠에 청량사터의 오뉘탑과 계명정사로 빠지는 시멘트 계단이 있다 곧바로 잘 닦인 길을 따라 좀더 오르면 오른쪽에 동학사가 나타난다. 그 절뒤 언덕에 늙고 건장한 소나무가 서 있으며 절 앞으로는 우람한 느티나무 밑으로 내가 흐른다. 그리고 그 곁에 팔각정 하나가 서 있다. 숙모전을 빼놓고는 절안의 건물, 곧 삼은각과 동계사가 칠십년대에 시멘트를 많이 써서 새로 지은 것이라 둘레의 경치와 어울리지 않는다. 1981년 가을에 새로 법당을 지었고 숙모전의 지붕을 다시 해 이었다. 이 절은 대전과 거리가 가깝기는 해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데 신라 성덕왕때에 처음 지어졌고, 조선시대 영조 4년에 신천영의 난으로 불타 버렸다가 순조때에 다시 지어졌다. 지금의 숙모전은 고종때에 그 전의 것을 헐고 세운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홍살문이 있는 것은 숙모전, 삼은각 같은 것들이 왕조시대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기 때문이다. 세조때의 문신 기시습이 동학에 와서 사육신의 초혼제를 올린 일이 있는데, 그 뒤로 세조도 이곳에 몸소 와서 자신이 죽인 단종, 황보인, 김종서를 포함한 3백여 가까운 넋을 달래는 곳으로 초혼각을 짓게 했다.

그 초혼각이 불에 타서 다시 지어져 숙모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또 삼은각은 고려의 유신인 길재가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과 정몽주의 넋을 달래는 제사를 지낸 곳으로 그 뒤에 이색과 길재의 위패도 함게 모셔져 삼은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동학사의 들목에서 오른쪽으로 난 가파른 돌길로 5리쯤 가면 삼불봉 바로 밑에 계명정사가 있고, 그 곁의 예전 청량사터에 오뉘탑으로 불리는 5층과 7층의 석탑 두 채가 나란히 서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 근처에 있는 토굴에서 도를 닦던 백제의 한 왕족이 어느 겨울 밤에 비녀가 목에 걸려 죽어가는 호랑이를 살려주자 호랑이가 그 보답으로 한 여자를 물어다 놓고 사라졌다. 그는 여자를 간호하여 살렸는데, 경상도 상주에 산다는 그 여자는 혼례를 치르고 신방에 들기 전에 호랑이에게 물려왔다고 했다. 왕족은 여자를 이튿날에 데려다 주려 했으나 밤새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혀 하는 수 없이 겨울을 함께 지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밤마다 끓어오르는 욕정을 좌선과 염불로 달래어 아무 일 없이 겨울을 넘겼다. 이듬해 봄에 약속대로 그 여자를 데려다 주었으나 그 여자는 곧 다시 되돌아와 불제자가 되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의남매가 되어 부지런히 불도를 닦아 훌륭한 스님이 되어 입적했다. 뒤에 그 제자들이 그들의 불심을 기려 나란히 탑을 세웠으니 이를 오뉘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5층석탑은 백제 것으로 보이고, 7층석탑은 훨씬 뒤의 것으로 보여 이 전설과 탑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이용정보

추가정보

추가설명
약도
이용소감 추천 1
어울림 부동산 자동차 쇼핑 배너광고
회사소개    이용약관    청소년보호정책    개인정보취급방침    고객센터
계룡N | ㈜월드N     서울 서초구 효령로 22 (방배동, 멤버스뷰 2층)     대표이사 : 김 두 현
사업자등록번호 : 210-81-64560     통신판매업신고 : 제2019-서울강북-326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서윤
Tel : 02-3471-8855     Fex : 02-3471-8901     E-mail : davidkim8080@naver.com
Copyright© Worldn.co.,Ltd. All right reserved